영신수련 중 자연관상 세번째

생명샘 110.♡.216.91
2010.04.05 22:08 3,98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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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8일 (주일 저녁 식사 후, 18:40-19:30), 하나님은 세 번째로 자연을 통해서 관상의 원리와 방법을 섬세하게 가르쳐 주셨다. 피정 지도자 신부님의 설명 개요를 듣고 주님의 탄생 기사의 신비에 잔득 기대에 차 있었다. 저녁 식사 중에 내적 음성이 아래편 연못에 세 번 머물기를 알려 주셨다. 챙겨온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연못에 이르러서 서편 한쪽 편에서 연못 전경을 찍었다. 어떤 모양이 형성 되었다. 연못을 바라보면서 이 연못의 세계를 보고 듣고 알게 되는 과정이 복음 관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 주님을 보고, 듣고, 맛보고, 느끼고 , 더 가까이 먼 곳에서, 주님을 알아, 주님과 일치되기까지 알아 가는 과정, 그 주님과 만나 제자들처럼 배우고, 함께 뒹굴고, 그 분의 사상이 나의 사상이요, 그 분의 가치관이 나의 가치관이요, 생각과 감성과 의지가 더 가까이 일치 되는 과정이 어떠한 것인가를 가르쳐 주셨다. 카메라가 찍는 위치에 따라 연못 전체 모양이 달라진다. 멀리서, 가까이서, 연못 안쪽에서 밖에서, 보는 각도에 따라 찍혀지는 모양이 달랐다. 수중 카메라로 연못을 찍으면 내면의 모습도 담아 낼 것이다. 직접 물속으로 들어가 살펴보면 더 자세히 들추어보게 될 것이다. 관상의 원리를 가르쳐 주신 것이다. 보는 위치, 보는 시각, 날씨, 계절, 각도, 카메라를 어떤 방식으로 어떤 위치에서, 어느 수준으로 보느냐에 다라 달라진다. 냄새로 알 수 도 있고, 상상으로도, 설계도를 보고도, 연못에 무엇을 넣었는가? 연못을 만들고 지금까지 지켜 온 사람들을 통해서,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통해서 내부와 실제 모양을 알아가게 된다. 태양이 사라진 후에도 여전이 연못은 밝아 연못을 세 번 돌아 세 번 머물며 사진에 담은 장면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빛이 연못에 비치는 빛의 밝기, 태양 빛이 아직 조금 남아 있는 상태에서 비치는 달 빛 때문인지, 별 차이가 없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밖의 그 연못은 어떨까? 저녁 8시쯤이니, 아마 태양빛이 완전히 저문 후라 달 빛 만으로 담는 그곳은 조금 달라져 있을 것이다. 글쓰기를 마친 후 꼭 다시가 보고 싶었다. 태양은 하나님, 달빛은 그 분의 빛을 받아 비추는 그 분의 제자들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본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한복음14:12) 말씀하신 주님의 빛 받아 비추는 달빛도 밝게 빛나게 되어 연못을 담아 낼 수 있는 것이다. 빛이 부족하면 카메라에 충전된 후래쉬로 연못의 모습을 담아 낼 수 있는 것이다. 그 밝기만큼 말이다. 그러나 태양빛이 비추는 그 만큼의 수준으로 제대로 담아 낼 수는 없는 것이다. 연못 내면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연못을 돌고 있는데 연못에 들어오는 물줄기가 쪼르르 소리를 내면서 흘러들어 오는 곳이 보였다. 생명의 물줄기이다. 그 물줄기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은 누군가 설계에 의해 물이 고일 연못의 모양이 만들어 지고, 들어오는 물줄기로 물이 담겨져 그 계속해서 살아있는 연못이 되고 있다. 이 얼마나 관상을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시는 주님의 자상함인가! 나는 이 자연관상 이후 계속 설레이는 가슴으로 마음 졸이는 순간,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샘물처럼 솟아오르는 은총의 기쁨이 나를 이끌어 주셨다. 성서 말씀 가운데 어떻게 가르치고, 보여주시고, 알게 하실지 기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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