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습니다
유보나벤뚜라
123.♡.226.171
2018.09.03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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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부끄럽습니다>
긴 세월 동안 세속의 혼탁함 속에서 버둥거렸습니다.
그러다 수도자가 되어 세속을 떠났습니다.
함에도 너무나 부끄러운 것은, 다시 긴 세월 동안, 세속을 떠났다는 착각 속에서 또 다른 세속을 살고 있었을 따름이었습니다.
껍데기를 핥으며, 겉옷만 바꿔 입은, 세속 아닌 세속을 살아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름은 도를 닦는다는 수도자인데, 너무나 유감스럽게도 도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수도자의 옷만 걸친 채 외형과 형식과 그저 일상의 일에만 매몰되어 있었습니다.
진리를 목말라하며 진리를 찾고 진리를 살아내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진리를 똑바로 가리키며 가르쳐 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저 믿음을 키워 나가며 전례에 충실한 가운데 맡은 바 일을 열심히 해 나가면 그게 수도자의 본분인 줄 알았습니다.
그게 아닌데
진리를 알고 살아내지 않으면 그 모든 것이 헛된 것인데
영은 생명을 주고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 하셨는데
서산 너머 해가 지고 있는 지금에서야 가야 할 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언제쯤 가겠습니까?
이미 길에 들어섰으면 굳이 그 길 마치지 않아도 괜찮다고 위안을 삼아야 하겠습니까?
너무나 많은 도반들이 나처럼 아직도 방황하고 있음을 봅니다.
나는 그 길을 마치지 못할 지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금생에서는.
지금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은, 갈림길에 서서 길을 잘못 든 이들에게 계속 고함쳐 그 길이 아니고 이 길이라고 가리키는 몫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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