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

유보나벤뚜라 123.♡.226.171
2019.02.14 17:59 2,281 0

본문

낮엔 계속 일을 합니다. 방향과 목표도 뚜렷하고, 가능한 그 길을 열심히 달리려고 애를 씁니다. 직선입니다.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떠난 화살입니다. 기도를 하고 책을 읽습니다. 피정 동반 하는 건 오히려 과외의 일같습니다. 


좀 아쉽습니다. 어쩜 한평생이 이렇게 낮으로만 이어져 온 것같아 그렇습니다. 밤이 없는 삶. 뭔가 일궈내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고는 경직되고 시야는 좁아져 버렸습니다. 주위가 점점 생명으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죽어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늘 분명하고 늘 가야만 할 길이 있고 늘 이뤄내야만 할 일이 있어야만 하겠습니까.


해가 지고 밤이 되면, 이제부턴 소설을 읽겠습니다. 시도 좋긴 하지만, 좀더 초점을 잃고 중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소설이 더 적합할 것같기 때문입니다. 


밤이 되어 소설을 읽으면 난 존재의 모습을 바꿀 것입니다.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 곳에도 없기도 할 것입니다. 물은 밑에서 위로 흘러가고, 가구들은 천장에 붙어 있을 것입니다. 반드시 알아내야 할 것도 없고 모른다고 부끄러워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낮동안 달려온 고된 영이 안식을 취할 것입니다. 완전 무장해제 한 체.


음과 양이 하나로 어우러져야만 할 것입니다. 어느 한 쪽만 있으면 불구가 되거나 급기야는 생명을 잃을 것입니다.


영신수련 피정도, 피정 중의 기도도, 이런 차원에서 이런 맥락에서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눈엔 핏발을 세우고 두 주먹엔 땀이 밴 가운데 피정이 흘러가선 안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의미 없는, 초점 잃은 눈망울만 굴리고 있어서도 안되긴 하겠지만 말입니다. 


모두들 알고 있는데 나만 모른다는 사실이 신선함으로 다가오겠습니까.

모두들 잘 하고 있는데 나만 서툴러 기우뚱거리는 모습이 따뜻함과 부드러움으로 다가오겠습니까.

모두들 한 곳을 보고 있는데 나만 다른 곳을 응시하는 눈길이 평안으로 다가오겠습니까.


그 모든 것이 신선하고 생명에 찼으면 합니다. 다름 속에서, 다르기 때문에.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쓰기

확인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